어머니와 딸 - 3. 남편

남편이 동경으로 간 후부터는 행동이 수상쩍은 일이 한둘이 아니었으나 이러한 편지를 하기 전까지는 차마 그에게 대하여 의심을 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역시 편지가 온 후에라도 제가 셈이 없어 그러거니, 철만 들면 어머니를 생각하기로서니 설마 그렇게까지 하랴, 이러한 위로로 스스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하나 며칠에 한 번씩 온다는 편지는 돈 보내라는 것 외에는 어서 이혼하고 당신도 다른 남편 얻어가라는 충고 비슷한 형식을 취하여 협박을 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좋게만 해석하던 옥이도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하여 그 잘하던 공부도 차츰차츰 뒤로 물러가며 따라 밤이면 꼬박 일어 앉아 새우는 밤이 점증하였다. 자기를 생각하여서 그러는 것보다도 나 어린 남편의 장래를 위하여 어쩌면 그로 하여금 편하게 마음대로 해주는 동시에 일생을 행복스럽게 만들어줄까, 자기의 신세를 마쳐 버리게 된다더라도 남편에게 행복함이 된다면 어떠한 일이라도 감행할 것 같았다.
옥이는 바느질그릇을 앞으로 당겨 놓고 일감을 들었다. 그러나 바늘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움직일 뿐이고 벌써 왔어야 할 남편이 아직 아무런 기별 없이 잠잠하니 기막힐 노릇이었다. 하여, 혹은 중로에서 무슨 남다른 일이나 만나지 않았나, 또는 동무집에 중참을 하지 않았나, 이런 생각으로 머리가 뒤숭숭하여졌다.
바라보니 조그만 거미 한 마리가 옥이 앞으로 조루루 내려와서 바느질그릇 위에 떨어지더니 또다시 줄을 거두어 가지고 천장으로 올라간다. 그는 물끄러미 쳐다보며, ‘거미가 내려오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데……’ 이런 생각을 하며 일어났다.
뜰앞 포플러나무 가지 위에서는 매미소리가 요란스럽게 난다. 옥이는 가만히 가만히 밖으로 나가서 나뭇가지를 살펴보았다. 매미는 푸르릉 하고 날아갔다. 숨이 답답하도록 햇빛이 내리눌렀다.
옥이는 골방 문 앞으로 왔다.
“나무 또 하러 가겠나?”
“가지요.”
기성이는 일어났다.
“그만두게. 그러고 차부에 나가보게.”
“오늘은 꼭 오시나요?”
매일같이 냄새나는 차부에 우두커니 나가 섰기가 열쩍었던 것이다.
글쎄 나가 보게나 “ , . 늘 나가다가 오늘따라 없이 안 나가는 날 마침 오늘 오신다면 여지 나가던 보람이 없어지지 않나?”
그는 마지못하여 옷을 툭툭 털고 어정어정 걸어나갔다. 그리 댐치 않은 꼴이었다.
“어서 빨리 가보게!”
소리치고 나서 안방으로 들어왔다.
밖으로부터 기성이가 가방은 들고 뛰어 들어온다. 순간에 그의 가슴은 쿵, 하는 소리가 자기 귀에도 확실히 들렸다.
“주인님 오십니다.”
기성이는 아까와는 딴판으로 엉덩춤을 추며 지게를 얻어 지고 밖으로 나간다.
그는 몸둘 곳을 알지 못하여 두루두루 보다가 부엌으로 나왔다.
어쩐지 가슴이 둘렁둘렁하기 시작하였다.
‘행여나 오늘 온다면 어쩔까, 어쩌기는 무엇을 어째?’ 이렇게 생각하며 픽 웃었다. 그러나 여전히 뒤숭숭하였다. 그의 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똑딱똑딱 시계를 따라 점점 가슴이 답답해 질 뿐이었다. 그는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쉰 후 가만히 일어났다.
구둣소리가 나자 남편이 들어왔다. 성큼 올라서서 방안을 들여다보며,
“옥씨, 어디 가셨소?”
부엌 뒷문에 비껴선 옥이는 두 눈이 캄캄해지면 땅 속으로도 퐁당 들어가면 좋은 것 같았다. 이때처럼 자신이 무겁고 귀찮을 때는 처음이었다.
기성이는 지고 온 고리짝을 내려놓고 땀을 씻으며 부엌으로 들어왔다.
“뎜심 어떻게 하나요.”
옥이는 머리를 돌렸다.
“한 그릇 시켜 오게.”
말소리가 들리자 봉준은 부엌 샛문을 열고 들여다보았다.
“옥씨, 안녕하시댔소?”
그의 얼굴빛은 아주 담홍빛으로 되었다. 기성이는 옥이를 한 번 더 쳐다보고는 빙긋이 웃고 밖으로 나갔다.
“어서 이리 들어와요. 왜 그러고만 있소? 반갑지 않아요?”
묻는 말에는 그리 탐탁히 굴지 않던 사람이 이번에는 아주 딴판이었다. 그럴수록 옥의 가슴은 점점 더 의문으로 꽉 채워졌다.
국수 그릇이 들어오자 상을 차려 기성이를 주었다. 그는 받아 가지고 안으로 들어갔다. 뒤이어 남편은 나왔다.
“여보 옥씨, 들어와요.”
옥의 등을 밀었다. 그는 안타깝게 얼굴이 확확 달았다.
“어서 들어가세요.”
그는 벙글벙글 웃으며,
“같이 들어가야 합니다.”
하는 수 없이 방으로 들어갔다.
남편은 상을 들어 옥의 앞에 갖다 놓고,
“기성이, 공기 들여 오게. 빈 그릇이라야 잘 알아듣겠군. 여보게, 빈 그릇 들여다주게.”
빈 그릇을 받아 놓고 국수를 덜어 자기 앞에 놓았다.
“같이 먹읍세다, 우리.”
저를 들어주었다.
“금방금방 먹었어요.”
“먹기는 나도 먹었소. 하 권할 때 못 이기는 것처럼 하고 들구려.”
옥이는 그의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입은 꽤꽤 썼다. 남편은 얼른 먹고 저를 놓았다.
“잘 먹었습니다, 옥씨.”
그도 따라 저를 놓았다.
“요새 방학했지요. 당신네 학교에서도!”
“네.”
“공부 자미나요?”
“그렇지요, 뭐.”
“김선생님 늘 오셨소?”
“네.”
남편은 벌컥 일어나서 양복을 훌훌 벗고,
“기성이, 고리 끌르게!”
그는 분주히 달려가서 고리짝을 벗기고 가로세로 줄진 하오리를 내어 입었다.
멍하니 바라보던 옥이는‘저것은 또 무엔고’ 어쨌든 남편이 하는 것은 다 좋아 보였다.
남편은 꺽둑이를 신고 마당으로 나갔다.
“여보게 기성이, 자네 다락 지을 줄 아나?”
그는 이상하다는 듯이 주인을 자세히 훑어보았다.
“글쎄요, 지으면 짓겠지요.”
“그렇지, 자네쯤 해서 다락 못 짓겠나?”
그는 벙글벙글 웃으며 포플러나무 아래로 왔다.
“여기다 짓게. 빨리 지어야 하네 정, 울짱 있나?”
“좀 있지요.”
“잘 되었네. 어디 있나?”
복술이는 밖으로부터 들어오자 컹컹 짖었다. 그는 복술이를 어루만졌다.
“강아지가 이렇게 컸나?”
마루에서 고리를 뒤지고 있는 옥이를 쳐다보았다.
밤낮으로 쓰다듬어 기른 복술이를 어루만질 때 옥의 가슴은 오싹해짐을 느꼈다.
기성이는 울짱을 한아름 안고 뜰 안목캐로 나왔다. 그리하여 구렁을 파고 기둥 네 개를 세웠다. 기성이가 땀을 씻는 동안 봉준은 괭이를 둘러메고 헛 괭이질을 하였다.
“것도 못하겠네그려. 자네 용허이.”
기성이는 허허 웃었다.
이리하여 봉준은 잔심부름 뻔뜩케 하여 해질녘에 겨우 다락을 지어놓았다.
“수고 단단히 했네. 고맙네.”
부엌으로 뛰어들자 개숫물에 손을 씻으며,
“저봐요, 옥씨!”
옥이도 따라 웃었다.
“좋지요, 기세는 밥 많이 주.”
기성이를 쳐다보고 빙긋이 웃었다.
그들은 어리둥절해졌다. 따라 어림상은 없어지고 떨리던 옥의 가슴도 적이 가라앉았다.
저녁을 물린 그들은 봉준의 권으로 다락 위에 올라앉았다. 그는 자기 손끝에 노는 기구를 전부 다락으로 옮겼다. 그들은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남편은 바이올린을 내어 뜯었다. 무슨 곡조인지는 몰라도 어쩐지 처량하게 들렸다. 그도 시원치 않은지 이번에는 하모니카를 내어 불었다. 어깨까지 들썩들썩 하였다.
모든 것에 능통한 남편을 쳐다보는 옥이는 속으로 ‘어머님이 계셨더라면 얼마 기뻐하시랴’ 남모르게 눈물이 흐르는 것이었다.
기성이는 두 분을 똑바로 뜨고 봉준이의 몸세 놀리는 대로 따라 움직였다.
하모니카도 싫증이 난 봉준은,
“자리 올려다 주우.”
이제야 기성이는 제정신이 들었던지 후닥닥 일어나 내려왔다. 뒤를 이어 옥이도 내려와서 자리를 올려주었다.
“옥씨, 편안히 주무시오 나 위해 오늘 수고 많이 하였소.”
늦게 일어난 남편은 다락문을 열고 부시시 나왔다. 미리 떠다 놓은 세숫물에 세수를 하고 다락으로 올라가서 한참 후에 나오는 그의 얼굴은 한층 더 환해졌다. 그는 밥상을 마주 앉으며,
“옥씨도 잡수어야지요?”
“먹었습니다.”
몇 술을 뜨는 듯하더니 상을 물리었다.
“오늘 주일날이지요?”
“네.”
남편은 양복을 바꾸어 입고 연해 면경 속으로 자기를 비춰보았다.
“기성이, 다락에서 솔 들여다 주게.”
가져오는 솔을 받아 위에서부터 내려 쓸었다. 햇빛에 일어나는 먼지는 오색으로 빛났다.
“예배당에 갑시다. 당신 예수 잘 믿지요 그래서 나 위해 기도 많이 하신댔지요.”
옥의 얼굴은 빨개졌다. 오밤중에 일어나 눈물 먹어 쓴 편지 일면이 그의 앞에 빤히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예수를 진실히 믿게 되었지요그려.”
빙긋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남편이 나가는 뒤꼴을 물끄러미 바라본 그는 ‘빠른 것은 세월이다!’ 하고 생각하였다.
재종 소리에 놀란 그는 분주히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와서 부엌 대문을 걸고 사랑문을 들여다보며 기성이에게,
“집 잘 보게.”
하고 사립문을 지치고 골목 새로 빠졌다. 복술이는 뒤를 따랐다.
예배당 가까이 오자 우렁차게 울려나오는 찬미 소리가 들렸다. 문안을 들어서며 ‘참으로 남편이 왔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남자 방을 힐끔 쳐다보았다.
“왜 언니 늦게 오시우?”
옥의 손을 꼭 잡아 제 곁에 끌어앉히는 학생을 바라보니 상애였다. 따라 학생들은 눈으로 옥에게 인사를 건네었다.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상애는,
“숙희라는 여자 왔어.”
가만히 말하였다.
“어디?”
그의 가슴은 호기심에 들떴다.
“언니 뒤, 네 사람 건너서.”
이번엔 입을 막고 말하였다.
그는 조심히 돌아보았다. 트레머리 한 얌전한 처녀들이 가지런히 앉았다.
순간에 그는 일종의 질투 비슷한 감정이 떠올랐다.
“어때?”
“곱구나”
“곱기는 무어 고와? 그렇게 치장해서 안 고울 년이 어디 있담 정, 신랑도 왔겠시다리?”
“응.”
“반가와?”
“그렇지.”
그는 의미 있는 웃음을 웃고 나서 찬송을 불렀다.
예배 다 마치기까지 옥은 불편함을 느꼈다. 그리고 남편과 숙희가 번갈아 떠올랐다. 따라 점점 자신은 아무것으로도 생각되지 않았다.‘그들은 많이 알고 쓰기도 잘 할 터이지. 나도 배우면 되겠지.’이리하여 겨우 가라앉히는 사이에 벌써 예배는 끝났다.
욱욱 밀려나가는 사람들 틈에 섞여 두 여자의 가는 뒷맵시를 바라보았다.
날씬한 허리, 알맞은 키와 샛노란 구두, 하얀 팔뚝 속으로 비치는 손시계.
등을 툭 치매 돌아보니 기순이었다.
“언니 남편도 왔구려.”
저켠을 바라보았다.
남편은 두 여자의 가는 뒷맵시만을 눈이 뚫어지도록 바라보는 것이었다.
순간에 그의 얼굴은 화끈 달았다.‘그렇겠지!’이렇게 속으로 부르짖었다.
남편이 어째서 이곳까지 오게 된 것을 잘 알게 되었다. 따라 그의 전신의 맥은 탁 풀리고 앞이 캄캄하였다.
“언니, 오후에 또 오지.”
“글쎄.”
이렇게 맥없이 대답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벌써 복술이는 앞장섰다. ‘나에게는 복술이밖에 없다.’하고 눈물이 쑥 비어졌다.
“얼마나 기쁘나?”
남편과 영철 선생이 마주 앉았다.
방학하고 곧 내려오지 “ 무엇하기 여직껏 있었담. 옥이는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네.”
빙긋이 웃어 보였다.
“글쎄올시다. 동무 집에서 붙잡아서……”
옥이는 윗방으로 가서 옷을 갈아입은 후 부엌으로 나갔다.
“자네 이번 학비는 전보담 많이 썼지. 될 수 있는 데까지는 절약해 쓰게.”
돈 이야기를 꺼내면 언제나 그는 듣기 싫었다.
“조선과 달라서……”
“음, 그런 줄은 잘 아네마는…… 내장골 논을 또 팔아야겠네.”
“팔지요.”
선생을 쳐다보았다.
“지금 곧 팔게 하지요.”
철없이 덤벙대는 봉준이를 물끄러미 바라본 선생은 난처하게 생각되었다.
“아무 때나 팔겠나, 내일 모레 벼를 비게 되었는데…… 늦은 가을쯤 가서 내어놓겠네. 아껴 쓰도록 하게.
그는 벌컥 일어나 왔다갔다 하며 마루로 나왔다. 그의 발 밑은 산뜻한 쾌감을 느끼며,
“무얼 하시우?”
옥의 이마 끝에는 땀이 방울방울 맺히고 불빛에 두 볼이 빨개졌다. 첫눈에 ‘과연 미인이다.’하고 봉준은 속으로 중얼대었다.
옥은 땀을 씻으며,
“점심 하지요.”
“여보 그만두. 더운데 시원하게 국수나 사다 먹고 말지. 어서 들어오우.”
점심을 먹은 봉준은 방에 앉았기가 어째서 불쾌하였다. 그는 모자를 들고 일어났다.
“참, 지독히 덥군.”
이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린 후,
“저는 놀러 나갑니다.”
하고 나가 버렸다.
“이번은 좀 나아진 것 같으네. 자네께 구는 것이.”
옥이는 잠잠히 머리를 숙였다.
“그렇지 않나, 말하는 것이나?”
숙인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의 두 볼은 붉어짐으로 대할 뿐이었다.
“논은 팔기로 되었네. 봉준이까지 팔라니까.”
“네? 팔라고 합데까?
감추었던 설움이 왈 쓸어 나왔다. 선생은 한숨을 쉬며,
“돈을 들이면 돈이 나오겠지. 그렇지 않나? 어쨌든 하던 공부는 마쳐야겠으니까……”
언지를 못 얻어 잔뜩 들이켰던 눈물은 좍 쏟아졌다. 선생도 마음이 언짢아졌다. 한창이나 묵묵하니 앉았던 그는,
“우는 것으로 일 치우겠나. 그런데 봉준의 말을 들으니 오는 봄에는 자네도 서울로 다리고 가겠다대.”
그의 귀는 번쩍 띄었다.
“내 생각에는 그것만은 잘 생각했다고 하였네. 이곳에 박혀 앉아 있다가는 결국은 자네만 속을 일일세.”
옥이도 그렇다고 생각되었다. 따라서 그가 어떻게 자기까지 공부시킬 마음을 먹었을까? 여기에서 실낱 같은 희망이 붙었다. 그러나 점점 패하여 들어갈 자기네 가세 형편이 무엇보다도 감감하여졌다.
“하나 공부하기도 어려운 판에 저까지 올라가면 아주 못살게 되게요.”
“하여간 가는 데까지 가보세구만. 몇 해 후에 제가 졸업을 할 터이니 그때에는 무슨 수가 나겠지.”
선생도 이렇게 쓸어치고 말았으나 역시 걱정 아닌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옥이를 이곳에서 살림살이나 맡아 가지고 엄벙덤벙 지나가다 공부 없다고 차던지든지 하면 그 역시 난처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우선두를 다 내세워 가지고 공부를 시킨 후 나중 문제는 자기네들끼리 해결하더라도 우선은 옥이로 하여금 여한이나 없게 하자는 것이었다.
선생은 일어섰다.
“자네의 한 번 생각에 달린 것일세. 몇 달 동안 꾸준히 생각해 두게.”
그도 따라 문밖까지 나왔다. 높았다 낮아지는 잠자리 지처귀 소리가 은은히 들렸다.
밤이 되면 옥이는 한잠도 못 잤다. 전에는 남편이 오면 낫겠거니 하고 기다렸더니, 남편이 막상 오고 보니 말 못할 새 설움이 한 가락 더해졌다.
남편 역시 번민을 하는 모양이었다. 낮이나 밤이나 오래오래 쏘다니다 가는 얼근히 취하여 벼락치듯 다락으로 기어올라가서는 목을 놓고 종종 우는 때가 있었다. 그리하여 옥이는 까닭도 모르고 다락 주위로 빙빙 다니다가는,
“어째 우시우?”
떨리는 손으로 다락문을 열었다.
그는 문을 쿡 닫으며,
“당신 참견할 일 아니오!”
그는 부끄러움과 노여움이 일시에 폭발이 되어 가슴을 짓모으는 것 같았다.
그는 몇 번이나 발길을 돌렸다가도,
“에라! 아직 철없어 그리는 것이겠지. 돌아가신 어머님을 생각하고 참자!”
이렇게 중얼거리고 방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뒷문 사이로 흐르는 차디찬 달빛은 옥의 얼굴을 한층 더 새하얗게 만들어 주었다. 그는 애꿏은 뒷문을 발길로 차던지고 발을 늘였다.
울바자 울짱과 울짱 사이로 걸린 거미줄은 달빛에 빛났다. 길같이 들어선 감탕나무, 칡넝쿨같이 엉킨 호박줄기, 별같이 빛나는 박꽃, 이 모든 것이 고요히 잠든 듯하였다.
그는 벌떡 일어나 밖으로 튀어나왔다. 그리하여 마루 위에 털썩 주저 앉았다. 방보다 훨씬 시원한 맛이 있었다.
몇 시간 후에 다락문이 열리자 남편이 셔츠 바람으로 기어나왔다. 그는 전신에 냉수를 끼얹은 듯한 쾌감을 느끼며 부끄러움이 앞을 칵 막아쳤다.
나막신 끄는 소리가 들렸다. 이리로 향하여 오는 것만 같았다. 한참 후에 또 신발소리는 났다. 뒤이어 다락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최후 용기를 다하여 바라보는 순간 남편의 흰 발목이 천천히 다락 속으로 들어갔다. 그는 얼결에 우뚝 일어섰다. 미친 듯이 마루 기둥을 얼싸안고 돌아갔다.
한참이나 정신없이 돌아가던 그는 나중에는 기운이 진하여 마룻바닥에 쿵 하고 엎어졌다. 갈갈이 흩어진 삼단 같은 그의 머리카락 속으로 빛나는 그의 흰 볼이 아담스러웠다.
잠꼬대에 낑낑하던 복술이는 쿵 소리에 놀라 툭툭 털고 일어났다.
한참 후에 선뜩선뜩함을 느끼자 가만히 정신을 차려 보니 복술이가 자기 얼굴을 내려핥고 치핥으며 낑낑하였다. 순간에 흰 발이 문득 떠올랐다. 그는 이를 부드득 갈고 일어났다. 그래 복술이를 껴안고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았다.
달이 포플러나무 가지에 비스듬히 걸려 샐쪽샐쪽 웃는 듯하였다.
그는 머리를 푹 숙이고 복술이를 놓아주었다. 산뜻한 바람이 그의 볼을 스치자 전신이 산뜻함을 느꼈다 . 그는 일어서 방으로 들어서자 매시하니 잠이 푹 들었다.
옥이가 며칠 전에 빨래질한 남편의 셔츠, 칼라, 넥타이, 양말들을 차곡차곡 얌전히 꿰맬 것을 꿰매고 하여 고리에 개어 넣었다.
“언니, 무얼 하시우?”
발을 들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바라보니 기순이었다.
“올라오너라. 용히 우리 집에를 오는구나. 어서 올라와.”
“아무도 없지?”
“그래, 누가 우리집에 있겠니?”
“그런데 다락은 언제 지었소?”
“요즘 지었다. 좋지?
빙긋이 웃었다. 기순이는 마루로 올라앉았다.
“언니, 숙제 다 했소?”
방으로 들어가자 책상 밑으로 갔다.
“야, 숙제가 다 무어냐, 넌 다 했겠구나.”
“언니두…… 나 같은 것이 벌써 숙제를 다 했으면…… 정말 공부 잘한다고 하게? 언니 신랑도 쉬이 가겠구려?”
“글쎄 가겠지.”
옥이는 밖으로 나가더니 바구니를 들고 들어온다.
“어제 십 전어치 산 것인데 퍽 달더라.”
“이제 점심 먹고 왔어요.”
노란 참외를 들고 껍질을 벗긴다. 기순이는 혼자서 상긋상긋 웃더니,
“언니, 이번 숙희라는 여자 자세히 보았지?”
옥이 주는 참외쪽을 받아든다.
“보았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선뜻하였다.
“왜?”
그를 쳐다보았다.
“무슨 말 들은 것 있는데 말할까 말까.”
남편에 관한 것임을 직감하자 호기심에 간질간질하였다.
“말하렴.”
“언니, 골 안 낼 테야?”
“왜, 무슨 말이기 그러니?”
“그만두겠소.”
그리고 참외를 깨물었다. 옥이는 바짝 대어들었다.
“어서 하려무나. 조롱만 하고 마니? 내 언제 골내는 것 보았니?”
“그래두……”
그를 똑똑히 쏘아보았다. 그리고 자주 자주 밖을 내어다보았다.
“이따 저녁에나 온다. 마음놓고 놀라우.”
“언니야 뭐, 미리 알겠지.”
“무슨 말인지 하려무나.”
그는 음성을 낮추었다.
“숙희라는 여자의 뒤를 늘 따라다니며 매일 편지하다시피 한대. 그래서 이번도 동경서 오기는 벌써인데 서울서 따라다니느라고 그렇게 늦게 왔다 두만.”
말끄러미 옥이를 쳐다보았다. 그의 예측한 바와 비슷이 들어맞았다.
“누가 그러던?”
“언니두, 누가 그러던 것까지 내가 말할 것 같애?”
“말하면 어떠냐?”
“그래, 숙희가 이리로 왔더니 분주히 따라왔다지.”
이 말에는 그는 불쾌함을 느꼈다. 그는 약간 미소를 띠워 언짢은 빛을 가리려 하였다.
“알 수 없지. 아내인 내가 눈치를 모르는데 다른 사람이 어찌 알꼬.”
“그래 어느 날 몰래 떠나겠다는 소리를 들었어. 너무 따라다니는 게 귀치 않아서.”
싸고도는 옥이가 미웠다.
“숙희란 여자가 얼마나 잘났는지는 몰라도 우리 그가 그렇게까지는 아니할 게다. 그건 다 너희들 수작이지.”
남편을 깎아누르는 것이 곧 싫어졌다. 기순이는 웃으며,
“보아, 저렇게 성을 내니까 내가 얼른 말할 수가 있나.”
그도 따라 웃으며,
“성이 아니라 글쎄, 들을세 짐작이 아니냐.”
“무얼 언니두, 너무 싸고돌지 말아요.”
그는 참외꼭지를 바구니에 던지고 나서 수건으로 입을 씻는다.
“에, 배불러.”
책상을 뒤적거려 과제장을 내어놓고 벌컥벌컥 뒤져본 후 일어섰다.
“어째서 일어나니?”
“내일 과제장 가지고 와. 어디 가던 길이야.”
기순이를 보낸 그는 기운없이 앉아 있었다. 모든 것이 사실일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생각하니 남편이 그지없이 불쌍하여졌다.
저녁을 먹고 나간 남편은 아홉시쯤 하여 뛰어들어오자 휘휘 둘러보더니,
“기성이!”
찾으나 대답이 없었다. 그는 부엌으로 나가더니 새끼를 한 아름 안고 들어와서 구석구석에 놓인 고리를 끌어당겨 꽁꽁 매었다.
물끄러미 바라본 옥이는 내일이나 가려나 부다 하고 생각될 때 울음이 칵 쓸어나왔다.
다 동인 고리를 가지고 밖으로 나가자 자전거 위에다 실어 놓았다. 그리고 다락으로 들어가 한참이나 버석버석하더니 얼른 양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옥씨, 난 갑니다.”
뒤이어 자전거 소리가 들렸다.
옥이는 전신이 메스근해지며 정신이 까뭇해지는 것 같았다. 그는 용기를 다하여 따랐다.
“어디, 어디 가셔요?”
“동경 가지요.”
여름내 참았던 분이 바짝 치밀었다. 하여 남편에게 매달렸다.
“여보소, 당신 몸에 해롭습니다. 당신은 어머님의 외아들이 아닙니까.”
봉준이는 사정없이 옥이를 밀쳐버리고 자전거에 올라 바퀴를 스르르 굴렸다.
옥이는 미친 듯이 그의 뒤를 따르다 기진하여 풀숲에 푹 고꾸라졌다.